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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중국인은 왜 대림동에 몰려들까?!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서면 보고 들리는 것이 달라진다. 휴대폰으로 목청 높여 통화하는 젊은이는 중국말을 쓴다. 간판엔 중국식 간자체가 보이고, 용어도 중국식이다. 좌판에서 파는 간식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이고, 빵집에선 중국식 호떡과 꽃빵, 튀긴 꽈배기를 판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어느새 작은 중국이 됐고, 우리 이웃이 된 중국인들이 골목골목 살고 있다.
대림동 일대는 작은 중국이 됐다.
대림동
대림동에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들이 몰려든 것은 대략 20여 년 전부터다. 가리봉동 일대 쪽방촌에 살던 이들이 그 동네가 개발되면서 시나브로 대림동으로 이동했다. 처음 800명 정도이던 중국 출신 거주자들은 이제 대림동에만 2만여 명이 산다고 한다. 이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가 일자리고, 둘째는 주거비, 셋째로 편리한 교통을 꼽는다.
대림동은 아직도 2~3층의 오래된 주택이 많고 대부분은 집 전체의 방을 나누어 세를 놓고 있다. 처음에는 반지하방과 옥탑으로 이사했다가 점점 조선족과 중국인이 집과 동네 전체에 스며들었다. 그들을 위해 가게가 열리고, 이제는 모두 중국식 업종이 점령하게 됐다. 덕분에 이 동네 부동산 시장은 호황이란다. 월세도 점점 올라 싼 방값은 옛말이 됐다. 그럼에도 좋은 조건의 빈방이나 가게 자리는 나오는 즉시 나간단다. 초등학교는 교실마다 학생들로 가득 찬다. 골목길엔 갓난아이를 안은 부부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고, 손잡고 걷는 신혼부부도 자주 보인다. 이 일대의 골목은 살아 있다.
대림동 골목 환전소는 다양한 민원사무도 함께 처리하고 있다.
대림동
대림역을 나와 골목에 접어들기 전 우선 보게 되는 것은 벽을 가득 메운 구인 광고판이다. 공장부터 농장, 주유소와 도축공장. 20대부터 60대 이후의 일자리까지 일손이 필요한 모든 직종의 직업들이 벽보로 붙어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의 대자보처럼 ‘인민이여, 와서 일하라’는 외침이 벽마다 빼곡하다. 게시물을 살피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에서 오는 인력이 줄면서 일손은 더 부족해졌단다.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사람 구하는 내용이 많았고, 임금과 근로조건 숙식 제공 여부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비계·철근·거푸집·미장·도배 등 전문직
만남의 광장이라는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대림시장으로 향하는 골목길 어귀에는 환전소들이 여러 곳 있다. 단순히 환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돈을 보내거나 비자서류를 대행해주고 각종 민원사항도 처리하는 고충 처리 상담소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행정사 사무소와 여행사도 눈에 띄는데 적어놓은 업무 내용에 영주권과 비자갱신은 물론이고 친자확인 광고도 붙어 있다. 나이든 직원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어디나 속고 속이고 얽힌 애정사가 골칫거리 아니냐”며 웃었다.
중국식 간자체 간판이 대부분이다.
직업교육소도 눈에 띄는데 요새 인기 있는 직종은 여자는 간병인, 남자는 건설현장 전문 기능인이라고 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얻는 데도 유리하단다. 이제는 단순 노동직보다 비계(飛階)·철근·거푸집·미장·온수·보일러·도배 등 전문직이 몸값도 비싸고 서로 모셔가려는 추세라고 한다. 서비스 업종은 중국에서 온 인력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대림시장 주변 골목에도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안전화며 작업복을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발에 딱 맞는 안전화를 고르려고 하자 동료 세 명이 나서서 그를 말렸다. 노련해 보이는 50대 노동자는 “신발은 한 치수 큰 걸 신어야 한다. 현장에서 조금 지나면 발이 부어서 일 못 한다”며 신발을 골라주고 있었다. 그에게 분위기를 묻자 “요즘 남자들은 건설현장 일이 많다. 기술 있으면 돈도 더 벌어 좋고, 아는 사람들끼리 팀을 만들어 현장에 같이 들어가면 의지도 되고 작업도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연고가 없으면 인근 남구로역 5번 출구 새벽 인력시장으로 가서 일당 일을 구할 수도 있고, 자신처럼 10여 년 이상 현장을 떠돌면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여러 군데서 온다고 했다. 건설현장에 “요즘 조선족하고 중국 사람 없이는 일 못 한다”고 장담했다.
대림시장은 전통시장임에도 보기 드물게 붐비고 번창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시장골목을 가득 메우고,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가 활기찼다. 시장 초입에 채소를 파는 오래된 좌판과 드문드문 퍼진 마른버짐처럼 내국인 가게가 있을 뿐, 상점 대부분은 한족과 조선족이 지배한 지 오래다.
대림동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골목 중 하나이다.
파는 물건들도 국내시장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이다. 돼지 꼬리부터 삶은 돼지코, 오리 튀김과 개고기 수육. 옌볜식 순대와 쓰촨식 채소절임. 어느 것 하나 흔한 물건들이 아니다. 주인과 손님은 태연히 중국말로 대화하고 있다. 채소가게에서 파는 오이는 짧고 뚱뚱한 모양이다. 값은 하나에 1500원을 달라고 한다. 국산 오이의 두 배 이상이나 비싼 값이다. 주인은 “이게 중국 오이인데 껍질이 얇고 맛있다. 그냥 먹어도 좋고, 채로 무쳐먹어도 맛있다”고 강조한다. 한 입 베어 먹어보니 우리 입맛엔 우리 오이가 맛있다. 그 옆에는 색깔도 옅고 모양도 제멋대로인 중국 참외를 함께 팔고 있다.
돈벌이 좋고 살기도 좋은 ‘작은 중국’
가게 주인에게 언제 왔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국적자다. 온 지 20년 됐고, 일가친척이 다 와서 이제는 여기가 고향이다”라고 했다. 국적자란 귀화해서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대림동 주민 중 대한민국 국적자의 절반 정도가 그처럼 귀화한 사람이라고 한다. 가게 주인은 자신이 떠나온 중국 지린성 시골마을보다 여기가 돈 벌기도 좋고, 살기도 불편이 없으니 아예 옮겨왔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도 한 채 마련했고, 장사는 나날이 잘돼서 옮겨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한다.
식품점에서 파는 식자재 대부분은 중국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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